
ABAQUS를 배우기로 한 이유
유한요소해석, FEM이 궁금했다.
내 전공은 물리학이다. 물리학과에서 배우는 내용들은 대부분 이상적인 상황에서 출발한다. 계산이 가능하도록 잘 정리된 문제를 해석적으로 푸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 방식은 아름답고 강력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직접 다루기 위해서는 그 사이를 이어줄 징검다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수치해석, 그중에서도 유한요소해석, 그리고 그 유한요소해석을 실제로 다루는 툴인 ABAQUS를 공부해보기로 했다.
솔직히 수치해석이나 유한요소해석 자체가 엄청 끌렸던 것은 아니다. 수학적으로 깊게 들어가면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종류의 수학에 가깝다고 느꼈다. 그래서 이론을 완전히 파고들기보다는, 현실 문제를 다루는 도구로서 ABAQUS를 써보는 정도를 목표로 잡았다.
ABAQUS를 선택한 이유는 명확했다. 꽤 전문적인 툴이고, 학생용 무료 버전이 있으며, 따라가며 공부할 수 있는 책도 있었기 때문이다.
ABAQUS에서 모델을 만드는 방식
ABAQUS는 크게 Models와 Analysis로 나뉜다. Models에는 일반 모델, CFD, Electromagnetic 모델이 있다. 내가 주로 공부한 것은 일반적인 구조 해석 모델이었다.
모델을 만드는 과정은 대략 다섯 단계로 이해할 수 있었다.
먼저 Part에서 기본적인 3D 객체를 만든다. 그다음 Material에서 물성값을 정의한다. 탄성계수, 포아송비, 밀도 같은 값들이 여기에 들어간다. 그리고 Section에서는 이 material을 어떤 방식으로 객체에 적용할지를 정한다. 선, 면, 입체 중 어떤 물리적 구조로 다룰 것인지에 대한 설정이라고 이해했다.
ABAQUS에서는 단순한 형태를 바로 만들 수 있는 Feature들이 있다. 복잡한 형상도 결국은 이런 feature들을 잘 이어 붙여 만든다.
여기서 유한요소해석의 핵심적인 과정인 Mesh가 들어간다. 하나의 큰 객체를 작은 요소들로 쪼개는 과정이다. 단순한 형상은 한 번에 mesh를 만들 수 있지만, 복잡한 구조는 여러 feature나 영역으로 나누어 따로 mesh를 만들고, 그 사이에 구속 조건을 부여하기도 한다.
Assembly는 part들을 조합하는 과정이다. 각 part를 실제 해석 공간에 배치하고, 초기 배열 상태를 결정한다. 이때 사용되는 part의 복사본들을 Instance라고 부른다. Part가 설계도라면, Instance는 실제 해석 공간 위에 배치된 객체에 가깝다.
Step에서는 해석이 어떤 순서와 시간 구조로 진행될지를 정한다. 초기 조건, 시간 스텝, 해석 방식 등을 설정한다. 정적인 문제인지, 시간에 따라 변하는 문제인지에 따라 Step의 의미가 달라진다.
Interaction에서는 instance 사이의 상호작용을 정의한다. 예를 들어 두 물체가 접촉하는지, 마찰이 있는지, 서로 묶여 있는지 등을 설정한다. 현실에서는 너무 당연하게 느껴지는 “닿는다”는 개념도 시뮬레이션에서는 직접 정의해줘야 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Loads와 Fields에서는 외부에서 가해지는 힘이나 장을 설정한다. 힘, 압력, 중력, 온도, 변위 조건 등이 여기에 들어간다. 결국 어떤 현실 문제를 시뮬레이션한다는 것은 물체의 형상, 물성, 상호작용, 외부 조건을 하나씩 명시적으로 객체화하는 일에 가까웠다.
모델을 다 만들고 나면 Job을 생성해 시뮬레이션을 실행한다. 계산이 끝나면 결과를 시각화해서 응력, 변형, 변위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공부하면서 알게 된 것들
ABAQUS를 공부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시뮬레이션이 현실을 그대로 넣는 과정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현실의 물체를 그대로 컴퓨터에 넣는 것이 아니라, 현실 문제를 계산 가능한 구조로 바꾸는 과정이다. 물체는 part가 되고, 물성은 material이 되고, 연결 관계는 interaction이 되고, 외부 조건은 load가 된다.
현실의 문제를 잘게 나누고, 각각을 명시적인 객체로 바꾼 뒤, 컴퓨터가 계산할 수 있는 형태로 재조립하는 것이다.

특히 mesh 개념이 흥미로웠다. 하나의 연속적인 물체를 작은 요소들의 집합으로 바꿔서 계산한다는 방식은 단순히 공학적인 기술이 아니라, 사고 방식으로도 쓸 수 있는 모델처럼 느껴졌다. 복잡한 것을 한 번에 이해하려 하지 않고, 충분히 작은 단위로 쪼갠 뒤, 다시 연결 관계를 정의하는 방식이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개념은 Eulerian formulation이었다. 일반적인 방식은 물체를 따라 mesh가 변형되는 느낌이라면, Eulerian 방식은 공간 위의 mesh 자체는 고정되어 있고 그 공간을 지나가는 물질의 특성이 바뀌는 방식에 가깝다. 물체 중심으로 볼 것인지, 공간 중심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 같은 문제도 완전히 다르게 모델링될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ABAQUS 공부 과정
공부는 책의 예제를 따라가는 방식으로 했다.
다만 책이 체계적으로 개념을 먼저 설명하고 예제로 넘어가는 구조는 아니었다. 오히려 예제부터 바로 던져주는 방식에 가까웠다. 그래서 처음에는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는 상태로 버튼을 누르는 느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GPT에게 물어보면서 역으로 체계를 잡아갔다. “이 단계가 전체 모델링 과정에서 어떤 의미인지”, “Part와 Instance의 차이가 뭔지”, “Section은 왜 필요한지”, “Mesh를 왜 나누는지” 같은 질문을 계속 던졌다.
그렇게 예제를 따라가다 보니 ABAQUS의 전체 구조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낯선 메뉴들의 나열처럼 보였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모델링의 흐름이 보였다.
형상을 만들고, 물성을 정의하고, 조립하고, 조건을 주고, 상호작용을 정하고, 힘을 가하고, 계산을 돌린다.
후반부에는 예제들이 점점 비슷하게 느껴졌다. Electromagnetic 부분은 교육용 에디션에서 지원되지 않아 직접 따라 할 수 없었고, 그때부터는 새롭게 얻어가는 것이 많지 않다고 느껴 눈으로 흐름만 확인하며 넘어갔다.
공부 후기
내가 배운 유한요소해석은 사실 컴퓨터가 대부분의 계산을 해주는 방식이다. 그래서 이걸 두고 순수한 수학이라고 하기도 애매하고, 과학이라고 하기도 애매하고, 공학이라고만 하기에도 묘한 느낌이 있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잡기술 같기도 했다.
그런데 바로 그 점이 좋았다.
현실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결국 이런 잡기술들이 필요하다. 이상적인 물리 문제를 푸는 것과 실제 구조물이 어떻게 변형되고, 어디에 응력이 집중되고, 어떤 조건에서 문제가 생기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ABAQUS를 공부하면서 공학과 과학 사이에 작은 다리를 하나 놓은 것 같다.
이제 어떤 시뮬레이션이 필요한 문제가 닥쳤을 때, 적어도 겁먹지는 않을 것 같다. “이걸 어떻게 하지?”라고만 생각하기보다는, “형상, 물성, 조건, 상호작용, mesh로 쪼개서 보면 되겠구나” 정도의 감각은 생겼다.
마지막으로, 여러모로 새로운 인지 모델을 얻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추상적인 것을 이해하거나 새로운 발상을 해내는 데에는 비유만큼 좋은 도구가 없다고 생각한다. ABAQUS를 공부하면서 얻은 mesh, instance, interaction, boundary condition 같은 개념들은 단순히 시뮬레이션 툴 안에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문제를 바라보는 비유적 모델로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복잡한 것을 작게 쪼개고, 관계를 정의하고, 조건을 부여하고, 결과를 관찰한다.
그게 ABAQUS를 공부하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