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이유
법학은 중요도에 비해 내가 너무 모르는 분야라고 느꼈다.
법은 생각보다 거의 모든 곳에 있다. 계약, 회사, 노동, 플랫폼, 재산, 처벌, 권리, 국가 구조 같은 것들이 결국 법 위에서 움직인다. 기술, 비즈니스, 제도, 사회를 더 현실적으로 이해하려면 법에 대한 기본 감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처음에는 그 기본 언어조차 없었다. 민법과 형법이 정확히 어떻게 다른지, 헌법이 일반 법률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도 명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세부적인 내용은 필요할 때 찾아보면 되지만, 기본 지도 자체가 없는 상태로 남아 있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법학을 한 번은 체계적으로 공부해보기로 했다.
왜 독학사를 선택했는가
나는 독학사 법학 시험을 공부의 틀로 삼았다.
목적은 학위 취득이 아니었다. 내가 독학사를 선택한 이유는 법학을 공부하기 위한 구조가 명확했기 때문이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분야를 배울 때, 나는 자격증이나 시험만 한 기준이 없다고 생각한다. 공부 범위가 정해져 있고, 기본 개념이 정리되어 있으며, 외부 평가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교양서적이나 교양 콘텐츠로 넓은 분야를 가볍게 배우는 방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기초부터 체계적으로 따라가야 마음이 편하다. 독학사 시험 과목은 그런 점에서 적당한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이 방식이 나에게 맞았던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째, 공부 범위가 명확했다. 막연히 “언젠가 법학을 공부해야지”라고 생각하는 대신, 정해진 과목을 따라가며 법 체계의 큰 지도를 만들 수 있었다.
둘째, 난이도가 적당했다. 너무 쉬운 기초 강의는 듣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는 느낌이 들고, 다른 법 관련 시험들은 공부량이 너무 방대하거나 특정 분야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었다. 독학사 시험은 제대로 공부하게 만들 만큼의 난이도는 있으면서도, 현실적으로 접근 가능한 수준이었다.
셋째, 시간제한이 있었다. 그냥 언젠가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면 조금 깔짝대다가 미루게 된다. 시험 날짜가 생기면 공부에 일정이 생긴다. 나에게는 그런 마감이 필요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시험에 합격했다. 물론 합격 자체도 의미 있었지만, 더 중요했던 것은 이 시험이 법학의 기본 체계를 처음부터 잡아보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공부한 내용
공부 범위는 법학 총론, 헌법, 민법, 형법, 행정법, 사회법, 국제법이었다.
총론에서는 법학이란 무엇인지, 법이란 무엇인지, 법과 다른 사회규범의 차이, 법의 종류와 분류, 법체계, 법 해석, 판결의 의미 등을 배웠다. 특히 영미법계와 대륙법계의 차이가 흥미로웠다.
헌법에서는 헌법의 특성, 헌법의 역사, 국가 구성, 기본권, 사회권,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헌법재판소와 선거관리위원회 같은 헌법기관을 배웠다. 생각보다 헌법이 자세히 적혀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동시에 상위법으로 갈수록 추상성이 높아진다는 느낌도 받았다. 그 추상성이 오히려 헌법을 재미있게 만들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주제는 저항권이었다. 저항권은 한국 헌법에 직접적으로 명시된 규칙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헌법 전문의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표현이 저항권의 근거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있다. 이런 해석 과정이 매우 흥미로웠다. 법은 단순히 한 문장을 읽고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원칙, 제도적 맥락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체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법에서는 기본 원칙, 자연인과 법인, 대리, 의사표시, 권리의 객체, 물권법, 채권법, 가족법, 상법, 민사소송법을 공부했다. 민법은 다른 과목보다 일상에서 접하기 쉬운 법이라 나름 재밌었지만, 예외가 너무 많아서 힘들었다. 특히 점유권에 대한 법원의 해석이 흥미로웠다. 법적 논리해석이 얼마나 정교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처럼 느껴졌다.
형법에서는 형벌의 원칙, 범죄의 개념, 미수범, 불능범, 공범, 형벌, 형사소송법을 공부했다. 특히 형사소송법 쪽이 재미있었다. 민법에 비해 형법은 더 엄격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예외가 적게 느껴졌다. 성문법주의와 죄형법정주의가 인상 깊었다. 국가가 사람을 처벌하는 영역에서는 규칙이 특히 명확하고 제한적이어야 한다는 점이 납득되었다.
행정법은 개인적으로 다른 과목에 비해 흥미를 느끼기 어려웠다. 사회법에서는 노동법이 비교적 재미있었다. 해고가 그냥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없고 법적 구조와 정당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국제법은 교재에서 다룬 내용이 비교적 가벼웠다.
공부하면서 바뀐 관점
공부 전에는 법을 “적힌 규칙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에 가깝게 생각했다.
공부 후에는 그 생각이 바뀌었다.
법은 고정된 명령문의 목록이 아니라, 복잡한 현실에 규범을 해석하고 조정해서 적용하는 체계에 가깝다. 사안이 추상적일수록 해석의 여지가 커지고, 조문, 원칙, 판례, 사회적 맥락, 제도적 역할이 서로 맞물린다.
그 점이 가장 흥미로웠다.
공부하다 보니 자꾸 더 궁금한 것이 생겼다. 한 개념을 공부하다가 관련 판례를 찾아보고, 예외를 찾아보고, 해석 논쟁을 찾아보게 되었다. 물론 내가 전문적으로 법적 분석을 할 수 있는 수준이 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 흥미로운 사건이나 법적 쟁점을 접했을 때, 관련 법 조문과 모르는 단어, 해석 자료를 찾아보면 기본적인 구조는 이해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 용기가 중요하다.
AI를 활용한 공부 방식
이번 공부는 새로운 분야를 배우는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들었다.
법학은 단순히 용어를 외우는 공부가 아니었다. 개념 사이의 관계, 예외, 맥락, 해석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 점에서 ChatGPT는 꽤 효과적인 학습 도구였다.
모르는 용어를 바로 풀어보고, 민법과 형법의 차이를 비교하고, 어떤 원칙이 왜 필요한지 질문하고, 내가 만든 이해 구조가 맞는지 확인하는 방식으로 활용했다. 단순히 답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우고 있는 인지도식을 검증하고 다듬는 데 사용했다.
특히 법학처럼 계산보다 의미의 층위와 해석 구조가 중요한 분야에서는 이런 방식이 잘 맞았다.
얻은 것
이번 공부의 가장 큰 수확은 법 개념 몇 개를 외운 것이 아니다.
더 큰 수확은 법을 읽는 기본 감각을 얻었다는 점이다. 이제 헌법, 민법, 형법, 행정법, 사회법, 국제법이 대략 어떤 위치에 있는지 감이 생겼다. 또한 법이 단순히 적힌 규칙들의 집합이 아니라, 해석과 제도 설계, 사회적 조정의 체계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낯선 지식 체계를 공부하는 또 하나의 방법도 배웠다.
명확한 외부 구조에서 시작하고, 기본 지도를 따라가고, AI로 맥락을 확인하고, 직접 노트를 만들고, 궁금한 지점에서 다시 세부 내용을 찾아본다.
법학 공부는 법 지식 자체뿐 아니라, 새로운 논리를 배우고 인지도식을 확장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게 이번 공부에서 얻은 가장 큰 가치였다.